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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만 언어가 있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의 식물들과 곤충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언어는 우리가 쉽게 알아챌 수 없는 화학 물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식물의 SOS 신호

     

    여러분은 풀을 깎을 때 나는 향기를 좋아하시나요? 그 상쾌한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사실 그건 식물이 보내는 일종의 'SOS' 신호입니다. 식물이 상처를 입으면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라는 물질을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데, 우리가 맡는 풀 냄새가 바로 이 VOCs입니다. 이 VOCs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식물은 이를 통해 주변의 다른 식물들에게 "위험해, 조심해!"라고 알리는 건데놀랍게도 이 신호를 받은 주변 식물들은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춘다고 합니다. 잎을 더 단단하게 만들거나, 해충을 물리치는 화학물질을 미리 만들어두는 식으로 말입니다. 더 재미있는 건, 이 SOS 신호가 해충의 천적을 부르는 역할도 한다는 건데 예를 들어, 배추에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꼬였다고 해볼까요? 이때 배추는 특별한 VOCs를 내보내는데, 이 냄새가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잡아먹는 벌이나 기생충들을 유인한답니다. 마치 "얘들아, 여기 맛있는 애벌레가 있어!"라고 외치는 것 같죠? 이런 식물의 SOS 신호는 정말 다양해요. 해충의 종류, 식물의 종류, 심지어 시간대나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답니다. 어떤 식물은 밤에만 특정 VOCs를 내보내기도 하고, 어떤 식물은 봄에만 특별한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요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식물은 다양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나요? 왜 식물은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소통할까요? 그건 아마도 식물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일 거예요. 동물처럼 도망갈 수 없으니, 대신 이런 화학적 신호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이 발달시킨 똑똑한 생존 전략인 셈 이입니다..

     

    곤충의 화학적 속삭임

     

    식물만 화학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니에요. 곤충들도 자기들만의 화학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페로몬'이라고 해요. 페로몬은 곤충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물질인데, 놀랍게도 이 페로몬이 식물과 곤충의 관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방들은 알을 낳을 때 특별한 페로몬을 남기는데이 페로몬은 "여기 알 있어요!"라고 다른 나방들에게 알리는 신호가 됩니다.그런데 더 신기한 건, 일부 식물들이 이 페로몬을 '도청'할 수 있다는 겁니다. 페로몬을 감지한 식물은 미리 방어 태세를 갖추거나, 심지어는 그 페로몬을 모방해서 나방을 속이기도 한답니다. 또 다른 예로, 꿀벌의 '왁스춤'을 들 수 있어요. 꿀벌이 8자 모양으로 춤을 추는 걸 본 적 있나요? 이건 다른 벌들에게 꿀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춤인데이 춤만으로는 부족해요. 꿀벌은 춤을 추면서 동시에 특별한 페로몬을 분비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답니다. 꽃의 종류, 거리, 방향 등 자세한 정보가 이 페로몬에 담겨 있는 겁니다. 곤충의 페로몬은 식물 수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떤 난초들은 특정 벌의 암컷 페로몬과 비슷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향기에 유인된 수컷 벌들이 난초를 열심히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옮기게 되는 겁니다. 식물이 곤충의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번식을 돕게 만드는 거예요. 정말 영리하지 않나요? 이렇게 곤충의 페로몬은 단순히 곤충들끼리의 소통 수단을 넘어서, 식물과 곤충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협력적으로, 때로는 경쟁적으로, 이 작은 화학 물질들이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화학 신호의 진화 게임

     

    식물과 곤충 사이의 화학적 소통은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는데이건 마치 军备竞争과도 비슷합니다. 식물이 새로운 방어 물질을 만들면, 곤충은 그것을 해독하는 능력을 갖추고, 다시 식물은 더 강력한 물질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온 겁니다. 이런 과정을 '공진화'라고 해요. 공진화의 재미있는 예로 '박각시나방'과 '담배'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담배의 니코틴은 원래 강력한 살충제입니다. 하지만 박각시나방은 니코틴에 내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니코틴을 자신의 방어 물질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를 먹은 박각시나방의 애벌레는 천적들에게 독이 되는 거죠. 식물의 방어 물질이 오히려 곤충의 무기가 된 셈입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예는 '의태'라는 현상인데. 어떤 나비들은 특정 식물이 만드는 독성 물질과 비슷한 화학 물질을 자신의 몸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이 물질을 이용해 자신의 천적들을 속입니다. "난 독이 있는 식물이야, 먹으면 위험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화학 물질을 '모방'하는 능력도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한 겁니다. 이런 진화 게임은 때로 정말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은 특정 해충을 유인하는 물질과 그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는 물질을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해충을 유인해서 잡아먹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그 해충의 천적까지 불러들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식물 주변에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의 다양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복잡한 화학 신호들이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런 화학 신호들을 연구해서 농업에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예를 들어, 해충을 쫓는 식물의 화학 물질을 이용해서 친환경 농약을 만든다든지, 수분을 돕는 곤충을 유인하는 물질을 이용해서 농작물의 수확량을 늘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