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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서는 매일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식물과 미생물 사이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이 관계가 항상 적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요이 복잡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식물의 미생물 인식 시스템

     

    여러분은 감기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열이 나고, 몸이 아프고, 코가 막히죠? 이건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놀랍게도 식물들도 이와 비슷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열이 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미생물의 침입을 감지하고 대응한답니다. 식물은 어떻게 미생물이 침입했다는 걸 알아차릴까요? 바로 '패턴 인식 수용체(PRRs)'라는 특별한 단백질들 덕분입니다. 이 수용체들은 미생물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정한 분자 패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셀 벽을 만드는 데 플라젤린이라는 단백질을 사용하는데, 식물의 PRRs는 이 플라젤린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치 경찰이 범죄자의 지문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PRRs가 미생물을 감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식물은 칼슘 이온을 세포 안으로 대량 유입시킵니다. 이건 일종의 경보 신호예요. 그다음활성 산소종(ROS)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건 미생물을 직접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됩니다. 동시에 MAP kinase라는 효소들이 활성화되어 방어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죠. 이 모든 과정이 몇 분 안에 일어난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식물은 장기적인 방어 전략도 가지고 있습니다.살리실산이나 자스몬산 같은 호르몬을 만들어내서 전신 획득 저항성(SAR)을 유도하는데이렇게 하면 식물 전체의 면역력이 높아져서 앞으로의 감염에 더 잘 대비할 수 있게 되는데 마치 우리가 백신을 맞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나요? 왜 식물은 이렇게 복잡한 인식 시스템을 발달시켰을까요? 그건 아마도 식물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일 거예요. 동물처럼 도망갈 수 없으니, 대신 정교한 방어 시스템을 발달시킨 겁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이 선택한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미생물의 교묘한 속임수

     

    식물의 방어 시스템이 이렇게 정교하다면 미생물은 어떻게 식물을 공격할 수 있을까요? 미생물들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름의 '무기'를 발달시켰죠. 바로 '이펙터 단백질'입니다. 이펙터 단백질은 정말 교묘한데이들은 식물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식물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거나 조작합니다. 어떤 이펙터는 PRRs를 분해해버리기도 하고, 어떤 건 방어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식물의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시켜 방어 반응을 완전히 꺼버리는 이펙터도 있대요. 마치 해커가 컴퓨터의 방화벽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분자 의태'라는 전략인데일부 미생물은 자신의 단백질을 식물 단백질처럼 위장합니다. 이렇게 하면 식물의 면역 시스템을 속일 수 있는데예를 들어, 크라운 갤 병을 일으키는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 호르몬과 비슷한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가짜 호르몬 덕분에 식물은 미생물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비정상적인 세포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지만 식물도 가만히 있지 않은데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은 이펙터를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단백질들을 발달시켰습니다. 이를 'R 단백질'이라고 하고R 단백질이 이펙터를 감지하면 더 강력한 방어 반응인 '과민성 반응(HR)'을 일으킵니다. 이건 감염된 부위의 세포들을 자살시켜 미생물의 확산을 막는 방법입니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체를 위해 일부를 희생하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이렇게 식물과 미생물은 서로를 속이고 알아차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함께 진화해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군비 경쟁'이라고 하는데, 자연 선택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쟁 덕분에 both 식물과 미생물은 더욱 정교하고 효과적인 전략들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협력의 미학, 미생물과 공생관계

     

    지금까지 식물과 미생물의 적대적인 관계에 대해 알아봤는데, 사실 모든 미생물이 식물에게 해로운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미생물들이 식물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죠. 이런 관계를 '공생'이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콩과 식물과 근류균의 관계인데요근류균은 식물의 뿌리에 들어가 특별한 구조물인 '근류'를 만듭니다. 이 근류 안에서 근류균은 대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줍니다. 대신 식물로부터 탄수화물을 얻죠. 서로 윈-윈하는 거예요. 이 관계 덕분에 콩과 식물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공생 관계로 균근을 들 수 있는데. 균근은 식물 뿌리와 곰팡이가 만드는 특별한 구조입니다. 곰팡이는 긴 균사를 이용해 토양 속 깊숙이 뻗어나가 물과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이렇게 얻은 영양분을 식물과 나누는 대신, 식물로부터 광합성 산물을 얻죠. 놀랍게도 지구상의 80% 이상의 식물이 이런 균근 공생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공생 관계에서도 식물의 면역 시스템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는 식물이 공생 미생물을 병원균으로 인식하고 방어 반응을 일으키지만, 곧 이들이 '친구'라는 걸 알아차리고 방어 반응을 멈춥니다. 대신 특별한 신호 전달 경로를 통해 공생 관계 형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발현시키고이 과정에는 복잡한 호르몬 조절이 관여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식물이 공생 관계의 양을 조절한다는 겁니다.예를 들어, 토양에 질소가 풍부하면 식물은 근류균과의 공생 관계를 줄여줍니다. 더 이상 도움이 필요 없으니까 반대로 영양분이 부족하면 공생 관계를 늘리게 됩니다. 이렇게 식물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생 관계는 생태계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다른 종의 식물들이 영양분과 정보를 교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마치 식물들의 인터넷 같은 건데이런 네트워크 덕분에 숲 생태계의 안정성과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합니다.